
여기서 밝히겠습니다.
이제부터 저를 카깃코(키빠돌)
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진짜로 부르진 말아주시고 거(..) 옛날 이타루그림체가 아는 것도 있다 보니 꽤나 요즘 맘에 든다니까요 진짜로
- 여튼, 그리하야 작년 초 CLANNAD로 저를 공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Key가 내놓는 키네틱 노벨의 첫 작품, planetarian입니다. 1050엔의 저렴한 가격, 온라인 인증을 통한 조금은 철저한 판매방식과 가벼운 볼륨. 조금 더 발전된 화면 효과 등으로 무장한, 이제까지와는 꽤 차별화된 (특히 판매 방식에 있어서) 노벨입니다. 무엇보다 패키지의 치명적인 허점이었던 불법 복제를 겨냥하여 염가 및 온라인 다운로드 서비스는 취지 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군요. 하드웨어 체크까지 하는 철저함에는 좀 기가 질렸습니다만.
- 주욱 즐기고 난 뒤 코멘트를 하자면, 10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담아낼 수 있는 그 모든 충실함을 느낄 수 있다- 라고 한마디로 줄일 수 있겠군요. 정말 한 편의 게임으로 평가한다면야 CG로 보나 시나리오로 보나 음악으로 보나 그 볼륨이 너무 작습니다만 1000엔으로 즐기는 분량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수준이라는 겁니다. 주는 만족이라고 치면 제값은 이미 톡톡히 한다는 거죠. 그 가격에서 제공할 수 있는 확실한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전연령이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점 또한 적어둬야겠군요.

- 허전한 타이틀 화면이지만 기본적으로 깔끔한 느낌입니다. AIR때까지의 정말 '필요하니까 꾸며넣은' 듯한 모습이 싫었는데 클라나드 이후로는 그나마 좀 더 보기 좋군요. 뭐 좀 더 일러스트가 있었으면 하는 느낌이지만 1000엔이니까(..) 중요한건 담긴 내용 아니겠습니까. 코츠에 그림체도 모에모에모에모에...(..하아하아하아하아하아하아)

이 아래부터는 본편의 내용을 적든 많든 다루고 있습니다. 플레이해보실 분은 읽지 않으시는 편을 권합니다.
- 간단히 소개를 해 보지요. 플라네타리움은 파멸한 지구 -- 디스토피아(distopia)라고 할 만한 -- 를 무대로, 우연히 고물상 노릇을 하던 주인공이 과거(30년전, 인류가 파국을 맞기 전)에 있었던 한 백화점의 플라네타리움에 우연히 들어가, 유일하게 남아 동작하던 로봇 유메미를 만남으로서 겪는 비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 대전쟁, 봉인되고 유기된 도시, 남겨진 전투기계들이 잔혹한 활동을 계속하는 살벌한 길거리. 많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살고' 있는 그런 세계에서 자신 또한 그러한 삶 (그리고 그 중에서도 더욱 삭막하고 위험한) 을 살아가는 주인공. 과거의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세계 (적어도 극중의 세계보다는 몇백배 이상)의 로봇이며, 지금도 그 세계 속에 있는 유메미. 유메미의 그 로봇다우면서도 로봇답지 않은 한마디 한마디가, 그리고 그 플라네타리움에서의 주인공의 경험이, 주인공의 심경을 변화시킵니다.

- 완전한 파국을 맞은 지구에서 유메미는 그 이름대로 '꿈꾸는' 로봇입니다. 30년 전의 풍요를. 평화를. 사랑을, 그리고 '사람의 꿈' 을 기억하는 로봇이지요. 그녀에게 이 부정하고 파괴된 세계는 끼어들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로봇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를 믿음으로 플라네타리움이라는 과거의 따스한 세계를 지켜온 주인인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살상 기계가 판치는 도시에 숨어든 주인공에게 그 공간은 비일상 그 자체이지요. 인간의 진실한 '마음' 이 버려지고 남은 공간. 그런 둘의 이야기이기에 제목이 planetarian이겠지요. 플라네타리움의 人. 혹은 행성의 사람.
- 뭐라고 할까요, 엔딩을 본 지금은 굉장히 뭔가 벅차올라서 말하기가 힘듭니다.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유메미이이이이이이이이이' 라고 외칠것만 같은 후유증이 심하군요 (...어이) 결말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커다란 무언가를 느끼고 공감하게 했습니다.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 남는 시나리오입니다 이건.

- 실제 내용이야 직접 보시는 편이 더 나을 테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한 채 진행하면서 저는 '네거티브의 세계에 익숙한 가슴에 뿌려지는 감성' 을 느꼈습니다. 유메미는 만들어지면서부터 '인간을 위한' 로봇. 그녀는 도시를 배회하는 살상로봇과 가장 큰 대비를 이루는 존재입니다. 심지어는 그 세계의 주민 (주인공으로 대표되는)과도 대비되지요. 이 대비가 마지막까지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요소라 하겠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던 시대를, 사람의 사랑을, '사람의 행성을' 기억하고 있는 존재.
- 끊임없이 인간에게 사랑받은 로봇인 유메미가 보이는 인간에의 사랑이, 정말 인간이 잃어버린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녀가 보이는 '사람을 위한' 행동은 로봇다우면서도 로봇답지 않지요. 메모리에 의존하는 로봇일지언정 그녀의 언행은 하나하나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습니다. '천국을 둘로 나누지 말아주세요' 에서는 완전히 폭사. 가슴을 푹 찔린 듯한 느낌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녀가 마음을 가졌는가- 라는 문제는 마지막의 빗물이 그녀의 눈물처럼 흐르는 장면과 겹쳐져 오랫동안 뇌리에 박혔습니다. 그녀는 과거를 주인공에게 전달하는 매개체이자, 과거의 주민 그 자체, 즉 주체이기도 한 셈이랄까요.
- 비록 가혹한 현실 아래 둘은 결국 좌절하고야 맙니다. 그러한 결말이지만, 이 이야기의 주제가 결코 그러한 절망에 있지는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저 한없이 '인간을 위할 뿐인' 차가운 로봇이 오히려 더 따스했던 아이러니. 로봇의 천국, 인간의 천국. 천국을 둘로 나누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말이 단순히 '로봇은 인간을 위한다' 라는 대명제 이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이 게임이 던지는 진정한 질문이 되겠지요. 황량한 세계에서 그것은 어떤, 진정으로 빛나는 가치를 지닐지도 모릅니다.
- 가혹한 현실 앞에서 그녀가 주인공의 말을 어기고 취한 마지막 행동은 비록 절대적이고, 너무 당연하고, 흔해빠진 로봇 3원칙이었지만, 논리인 3원칙을 그녀는 마치 '마음' 으로 행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기동불능을 앞두고 그녀가 보인 것은 인간이 잃은 '슬픔' 이었고, 그것은 '로봇이기 때문의' 슬픔이었을 테죠. 주인공이 느끼는 '인간이기에의 슬픔'과 유메미의 '로봇이기에의 슬픔' 이 교차되면서 플라네타리안의 작은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엔딩 스탭롤을 보며 느낀 복잡한 감흥을 어찌 글로 적겠습니까...

- 플라네타리움은 어떻습니까?
-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무궁무진한 반짝임.
- 하늘 가득한 별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 모든 배치와 대비가 멋졌습니다. 화면 효과는 더욱 액티브했고, 글은 몰입해 읽기 좋았습니다. 1000엔은 뽕을 뽑고 떡을 쳤습니다. 수수료조차 결코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해 준 Key 제작진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 쾅.
ps. 한자가 좀 장벽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자율소사전차라던가, 유총탄(유탄발사기)라던가 접하기 힘든 용어들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말이죠.
ps2. 정말 볼륨은 기대하지 마세요. 너무 짧다거나, CG장수 음악수 적다거나 신경쓰다 보면 이 게임의 기본적인 가치를 간과하고 들어가는 겁니다. 이 게임은 1000엔. 가벼운 마음으로 짧게 즐기는 노벨입니다. 그리고 그 값만큼의 만족은 분명히 줍니다.





